양국 관계
한국 내의 오스트리아 대표부
형식상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주국과 조선왕조간에 1892년 6월 23일 우호통상항해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상호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조약에는 한국에 영사업무를 담당할 대표부를 세우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원본은 빈에 있는 궁중 및 국가기록보관소에 비치되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1963년 10월 18일에 오스트리아 공화국과 대한민국 사이의 외교 관계가 수립되었습니다. 주일본 오스트리아 공관장이 동시에 주한 대사로 파견되었습니다.
최초의 상주 대표부로는 1969년 서울에 오스트리아 명예영사관이 개관했습니다. (1997년 8월에서야 명예영사의 사망으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무역 교역이 점점 많아지면서 1975년에 오스트리아 연방상공회의소가 서울에 무역대표부를 개관했습니다.
1985년이 되어서야 한국의 수도에 상주하는 오스트리아 대사관이 설립되었습니다. 이어 역대 상주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들의 명단입니다:
Dr. Peter MOSER 페터 모저 대사
Dr. Felix MIKL 펠릭스 미클 대사
Dr. Horst MEZZAI 호르스트 메짜이 대사
Dr. Ewald JAEGER 에왈트 얘거 대사
Dr. Helmut BOECK 헬무트 뵉크 대사
Mag. Wilhelm DONKO 빌헬름 돈코 대사
서울에 있던 명예영사관은 명예영사의 사망으로 1997년 8월에 문을 닫았습니다.
1999년 4월에 오스트리아 측에서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위한 국방무관(북경 상주)을 임명했습니다. 하지만 이 파견은 2001년 말에 다시 취소되었습니다.
2002년 12월 5일에 최초의 오스트리아 명예영사관이 부산에 개관했습니다. 강영국 전 명예영사의 사임(직업상 발령)으로 명예영사관은 2004년 2월1일 당분간 문을 닫았습니다. 2005년에 한국의 사업가 임병문회장이 새 명예영사로 임명되어 2005년 7월 28일에 주부산 오스트리아 명예영사관의 재 개관을 축하하는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양국 관계에 관한 일반 사항 :
양국의 정치적 관계는 전체적으로 보아 양호하고 큰 문제 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매우 큰 발전이 있었던 부분은 문화부문, 특히 음악분야에서였습니다. 한국사람들은 거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오스트리아의 클래식 음악을 좋아합니다.
한편, 2007년 1월 1일부터 취임한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2006년까지 대한민국 외무부 장관을 지내기에 앞서 주오스트리아 한국대사로 역임한 바 있습니다(1998-2000). 이처럼 오스트리아에서 돌아온 수많은 외교관들이 현재 한국에서 고위직에 있습니다.
의회 차원에서도 친선협회가 존재합니다.
또, 오래 전부터 빈에는 오-한 친선협회가 있고 서울에는 한-오 친선협회가 있습니다. 후자에는 오스트리아에서 공부를 했거나 그 외에 오스트리아와 관련이 있는 한국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최초의 "퍼스트 레이디"가 오스트리아 출신이었다:
또 언급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이 오스트리아 출신의 프란치스카 돈너(1900-1992)였습니다. 그에 관한 전기 성격을 띈 소설이 2005년 10월에 출간되었습니다. 작가는 한국 출신의 오스트리아인으로, 이순애 Fink입니다.
원래 돈너가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카(혹은 "프란체스카" - 이 외에도 쓰는 방법이 여러 가지이다) 리의 이야기는 한국 전역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900년 인처스도로프에서 태어났고 1992년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33년 우연히 제네바에 있으면서 망명 중이었던 한국의 정치가 이승만을 알게 되고 후에 그와 결혼했습니다. 이승만은 정치적으로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고 망명정부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는 국제연맹과 접촉을 하기 위해 제네바에 왔던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이승만은 미국의 도움으로 한국에 돌아와 1948년 대한민국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1960년까지 대통령직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프란치스카 리는 대한민국 최초의 "퍼스트 레이디" 가 되었습니다. 이 기간은 1948년부터 1960년까지 계속되었으며 이는 1950년에서 1953년 사이 한국전쟁 기간에도 그 직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프란치스카는 항상 남편과 함께 하여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카는 사랑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두 가지 면에서 사랑을 받았는데, 하나는 겸손했기 때문이며 또 하나는 한국 문화를 눈에 띄게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가령1965년 남편의 사망 후에도 그는 대부분 한국의 전통의상을 입고 대중 앞에 섰습니다. 그 후 20년 동안 한국에서 살았습니다, 1970-1992). 나이든 세대에게 오스트리아는 "프란체스카" 의 친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란치스카의 일생은 여성사의 일부이기도 하고 오스트리아와 한국 사이의 매우 특별한 접점
지난 몇 년간 이루어진 중요한 방문 및 회담
2000년 10월 19일에 쉬슬 총리와 한국의 이한동 총리가 서울에서 양국 실무자회담을 가졌습니다. 쉬슬 총리는 10월 20일에서 21일까지 열린 ASEM 3 정상회담에 참가했습니다.
페레로발트너 외무부 장관이 한국을 공식적으로 방문한 것은 2001년 5월 27일에서 29일까지였습니다. 이 방한의 답례로 페레로발트너 장관은 당시 한국의 한승수 외교부장관을 오스트리아로 초청했습니다.
한국의 최성홍 외교부장관은 2002년 13일부터 15일까지 오스트리아를 방문했습니다.
2002년 6월에 한승수 외교장관이 제56회 유엔 총회의 의장 자격으로 오스트리아를 공식 방문했습니다.
그 외 2002년 3월에는 이만섭 국회의장이, 그 해 11월에는 그의 후임 박관용 의장이 하인츠 피셔 국회의장을 만났습니다.
2003년 4월 8일부터 10일까지 라이틀 오스트리아 상공회의소 소장이 경제대표단을 이끌고 방한하여 황두연 통상교섭본부 본부장과 만났습니다.
2004년 10월 16일부터 18일까지는 이해찬 국무총리가 경제대표단을 이끌고 오스트리아 총리의 초청에 의해 오스트리아를 방문하여 연방대통령과 국회 의장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오명 부총리는 2004년 11월에 오스트리아를 방문하여 오스트리아 부총리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